쉰목사의 매일 칼럼

쉰목사의 매일 칼럼

제목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경이로운 발견
등록일 2019년 03월 11일 20시 58분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엊그제 필자는 치과에 갔다. 오랫동안 염증에 시달린 이빨의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과거 무지막지하게 인생이 떠내려갔던 시절, 치주염이 심해져서 고통을 견딜 수 없게 되면 치과에 가서 이빨을 뺐다. 그러나 새로 해 넣을 수 없는 돈이 없었기에 방치해두었다. 그렇게 빠진 이빨이 늘어나면서 듬성듬성해진 이빨들이 옆으로 드러누우면서 이빨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빨에 신경을 쓸 만큼 삶에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사역을 시작하면서 방치해둔 이빨을 돌볼 여력이 생겼기에, 이제는 치과에 다니고 있다. 엊그제 간 치과는, 필자가 시골에 와서 다니던 치과건물에 새로 들어온 원장이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그전의 원장은 뉴질랜드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고 한다. 새로운 원장은 나이가 필자와 비슷해 보이는 중년이었는데, 미국 보스턴대학의 세미나수료증을 전시해놓은 게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치과병원에서는 자격증만 걸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미국에서 공부한 분인가 하여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학위수료증은 아니었다. 그런데 시골에 세미나 수료증을 폼 나게 전시해놓은 게 기이했다. 원장은 X레이 사진을 찍은 결과를 보여주면서, 이빨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빼내면서 뼈 이식을 해야 하는데, 결과가 안 좋으면 대학병원에 가서 턱뼈를 깎아서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면 1,2년 이상 걸릴지 모른다고 엄포를 주었다. 필자의 이빨 상태가 상당히 안 좋다는 것은, 치과에 다니면서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의사는 처음 보았다. 어쨌든 다음 일정을 잡아놓고 집에 돌아왔는데, 전에 근무하던 간호사가 필자부부가 병원에 왔었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했다. 자신이 옮긴 병원에서 다시 진찰을 받아보고 결정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간호사는 예전에 아내와 친근한 관계를 유지했었던 터였다. 그래서 그 간호사가 근무하는 병원에 갔다. 그 병원은 새롭게 신장개업한 병원이어서 시설이나 환경이 깨끗했다. 그 병원의 원장은 사십 세가 아직 안되어 보일 정도로 젊은 의사였다. 사진을 찍고 난 결과는 간단하고 명확했다. 발치를 한 뒤에 뼈 이식을 하시고 나서, 3개월 뒤에 임플란트를 하시면 된다고 간결하게 말했다. 대학병원에서 턱뼈를 깎아 수술을 해서 1,2년을 기다려야 될지도 모른다는, 어제 간 병원의 중년의사의 말과 너무도 비교가 되었다. 그 이유를 아는 게 어렵지 않았다. 중년의 의사는 새롭게 도입된 임플란트 치료법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으며, 이 젊은 의사는 임플란트를 전문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처럼 상태가 안 좋은 경우에는, 임플란트 시술을 대하는 의사들의 말에서 그들의 능력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임플란트 시술방식이 도입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년의 의사는 치대에서 배울 수 없어서 나중에 개인적으로 배워야했지만, 이 젊은 의사는 임플란트 시술을 의대시절부터 집중적으로 배우고 졸업하면서 적지 않은 지식과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임플란트에 대해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임플란트 재료가 사람의 턱 뼈와 잘 붙는 현상을 이용하여, 충치나 잇몸병으로 없어진 치아나, 사고 또는 종양 등으로 인하여 뼈와 잇몸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 미용뿐만 아니라 기능까지 회복시키는 치료를 말한다. 임플란트(Implant)의 뜻은 영어로 Im+plant로서 ’(나무를)심는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임플란트는 1952년 스웨덴의 정형외과 의사인 브레네막교수가 뼈의 치유과정에서 우연히 토끼 다리뼈에 티타늄이라는 금속이 수개월이 지나도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는 현상을 발견하여 인공치아 이식술를 개발하였다. 치과 임플란트는 198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상용화되었다.‘

 

결국 임플란트는 최근에 치과에서 상용화된 시술방법이므로, 오래전에 공부했던 의사보다 최근에 공부한 젊은 치과의사가 이를 더 잘할 수 있다. 마치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이 60대의 노년보다 2,30대의 젊은 층이 능숙한 이유와 다르지 않다. 이처럼 치과의 임플란트 시술법은 치과치료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그 전에는 틀니를 이용하는 방법이 주였지만, 틀니는 불편할 뿐 아니라 씹는 강도가 원래의 20%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치과의사들의 치료능력이다. 과거에 임플란트 이식법이 상용화되지 않는 시절에 의대를 다닌 의사들은, 임플란트를 새롭게 배워서 능숙하게 치료에 활용하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 임플란트를 능숙하게 잘 하지 못하는 치과의사는 더 이상 설 땅이 없는 게 차가운 현실이다. 필자가 이 얘기를 장황하게 하느냐면, 성령에 대한 우리네 교회의 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바톤을 이어받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이다. 물론 성령 하나님은 천지창조 시절부터 성부하나님과 성자예수님과 함께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하나님의 약속하신바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에 따라 사도들과 120여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 끝에 임재하시면서 성령의 사람이 되어 초대교회를 시작하게 된 원동력이다. 그래서 지금은 성령의 시대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성령이 내주하는 신앙방식이다. 우리네 교회는 여러 성경구절의 인용하여, 영접기도행위를 마치면 성령이 자동적으로 들어오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주일성수를 비롯한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은 물론, 이 땅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축복을 받아 성공적이고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성령이 내주하고 있다는 교인들의 상태이다.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만 진배없이 무능하고 무기력하며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목회자들의 답변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성령이 계시기는 하지만 활동을 하지 않으셔서 깨워야 한다는 등이다. 그러나 목사들의 답변에 이의를 달거나 의구심을 표출할 수 없는 교회분위기이다. 그래서 아무로 이에 대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해봐야, 믿음이 부족하다거나, 목사에게 대드는 교인으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인들은 성령이 계시지도 않은데 성령이 계신 적처럼, 벌거숭이 임금님 코스프레를 하며 교회마당을 밟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살펴보았다.

 

성령의 사람이 되려면 새롭게 변해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하나님은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삶에 적용하여야 할 것을 명령하고 계시다. 그래서 당신은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계신가? 뭐 그렇다고 하기는 그래도, 아니라고 할 크리스천도 별로 없을 것이다. 주일성수를 성실하게 하고 있으며 십일조를 비롯한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자신을, 몰라줄 하나님이 아니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날마다 변화가 되고 있는가? 변화가 뭔지 모른다면 나비를 생각하면 된다. 나비의 애벌레가 무럭무럭 자라면 입으로 고치를 만들어 번데기가 되며, 번데기가 나중에는 화려한 나비로 변신한다는 것쯤은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징그러운 애벌레의 모습에서 누구나 감탄하는 나비의 변신은 누구나 깜짝 놀랄만하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변화의 모습이다. 그래서 당신은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했을 때, 확연한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아쉽게도, 당신을 포함해서 우리네 주변에 그런 크리스천들은 거의 없다. 10년 전의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나 별 차이가 없다. 아니, 과거에는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지금은 심드렁하게 교회마당을 밟고 있는 이들이 더 많이 보인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얼마 전 성령께서, 주가 쓰시는 사람은 누구든지 막론하고 새것을 쓰신다고 말씀하셨다. 새것이란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운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 안에 들어와서 육체의 사람에서 그리스도의 사람, 즉 성령의 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된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드높은 교회직분을 자랑하는 당신은, 육체의 사람에서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는가? 육체의 사람은 신앙생활의 목적이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세속적인 유익을 달성하는 데 있다. 교회에 와서 부유해지고 성공하려는 세속적인 사람이 그렇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은 종교적인 사람이 그렇다. 성령의 사람은 자신을 감추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삶의 목적이고 신앙의 목표이다. 그래서 당신은 신앙의 연륜이 오래될수록, 벼가 익어서 고개를 숙이듯이 성숙되고 완성되어 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가고 있는가?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9:16,17)

 

위의 구절은 너무 유명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예수님의 비유이다. 예전에 성령께서 이 비유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새 부대는 새 믿음이고, 새 술은 성령이라고 말씀하셨다. 새로운 믿음은 성령이 들어오셔서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1분짜리 영접기도를 하면 성령이 자동적으로 들어오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우리네 교인들이 죄다 믿음의 능력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으며, 성령의 능력과 변화, 증거와 열매를 보여주고 있는가? 없다면 없는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없는 데도 있다고 하니까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성령이 없다면 당신의 영혼은 죽은 목숨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다가, 죽으면 불이 활활 타는 영원한 지옥으로 던져질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16:17,1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예수님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잘라 말씀하셨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만이 그리스로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자신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하지만, 성령의 능력이 없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보라. 그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그들은 겁 많고 무식한 어부에서 대제사장과 논쟁을 할 정도로 담대한 사람으로 변했다. 그들이 성경의 깨달음만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놀라운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고질병을 치유하고 이적과 표적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과거나 지금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아니 예전에는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신앙행위를 하였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시들해버리고 사그라지고 있다. 그 이유는 성령이 떠나가신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경이로운 발견,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

 

그간 우리네 교회의 기도방식에 의하면 하나님을 부르는 건 기도가 아니다. 그래서 필자가 이 기도훈련을 시작했을 때, 식구와 친척을 포함한 많은 사람으로부터 의구심을 샀고 심지어는 조롱과 멸시를 받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수십년간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을 본적도 없고, 이 기도를 가르치는 교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판단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평생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게 마련이다. 특히 신앙에 관련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연유로 평생 듣지도, 보지도 않은 기도방식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이 기도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그동안 교회에서 배워왔던 기도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신도 20여년동안 기도를 포함해서, 교회에서 가르쳐주는 신앙방식을 열정적으로 따라했었지만 아무런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업을 실패하고 걷잡을 수 없이 떠내려가다가, 다시 회심을 하고나서 그동안 교회에서 배운 신앙방식을 죄다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성경을 집어 들고 샅샅이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방식은 기도와 말씀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두 가지 방식을 통해 진짜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기도의 방식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기도하는 장소와 시간을 정해놓거나 기도하는 기간을 작정하거나, 헌금을 가져오거나 금식하면서 기도하는 등의 형식만을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방식은 아니다. 성경은 새벽에만 기도하라고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교회나 기도원 등의 특정 장소에서 기도하라고 하지 않고 어디서나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특히 방해받지 않고 기도하는 장소인 골방을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의 기도방식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그 때서야 비로소 알았다. 항상 쉬지 않고 기도하려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기도하여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샅샅이 뒤졌다. 우리는 기도하자마자 당연히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믿고 있다. 그 생각이 옳다면 필자의 20여년의 기도는 왜 응답이 없었을까? 라는 생각에, 기도자리에 앉으면 죄다 하나님이 들으시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가지고 성경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희한한 말씀들이 필자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는 권면이었다.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 그를 간절히 찾으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찾으라는 말씀이 수도 없이 나온다. 아니, 우리가 기도자리에 앉자마자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신다면, 굳이 하나님을 찾고 부를 리가 무에 있겠는가? 이미 우리 안에 와계셔서 기도를 듣고 계신데, 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고 권면하시겠는가? 그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지 않다는 반증이 아닌가? 안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간절히 불러서 우리 안에 모셔 들여야 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1분짜리 영접기도를 하면 성령이 쏜살처럼 들어오신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필자의 주장에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다. 어째든 그간 20여년의 평신도시절의 필자의 삶에 성령이 계시다고 인정할 수 없었기에, 필자는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시작했다. 그것도 성경에 있는 대로, 틈만 나면 쉬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방식대로 기도를 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여러 분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냐는 증거일 것이다.

 

죄와 싸워 이기는 기도, 예수피를 외치는 기도

 

성령이 내주하는 상태는 하루 종일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예외 없이 하루 종일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기도를 하려면 혼자 있을 때 무시로 기도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아침과 밤에 방해받지 않은 시간에 각각 1시간 이상 기도하고, 낮에도 틈만 나면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떠올리며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처음에는 각종 정신질환과 고질병, 삶의 지난한 문제로 인해 갈급한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했던 사람들도, 병이 낫고 삶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신도 모르게 느슨하게 된다. 그리고 먹고 사는 데 바빠서, 혹은 이런 저런 일로 정신 줄을 놓으며 살다보니 형식적인 기도시간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 줄 아는가? 바로 기도를 방해하는 악한 영들의 공격에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이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들어오시는 이 기도를 집요하게 방해한다. 그래서 설령 입에서 단내가 나는 기도를 통해서 어렵사리 성령이 갓 임재 했더라도, 악한 영들은 포기하지 않고 먹고 사는 일에 바쁘게 만들거나 죄를 짓게 만들어서 결국 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을 포기하게 만든다. 귀신들이 이 공격을 얼마나 집요하게 하는지 성령께서 필자에게 해주신 말을 옮겨 드리겠다.

 

귀신은 절대로 물러나지 않고, 지혜로운 자들이 기도를 계속할 때 믿음을 확인하고, 자비로운 하나님을 뵙고자 힘쓰고 애쓸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버지가 오신다는 소식을 들을 때 물러나자만, 다시 방문하고 일생동안 기회를 엿보는 자들이다.’

 

그래서 영성학교 식구들의 상당수가 중간에 기도가 정체되고 지지부진해지는 이유이다. 귀신들의 공격을 인지하지 못해서 기도 줄을 놓치며, 이런 저런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므로 성령이 떠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침과 밤에 정해진 시간에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지만, 낮에 틈나는 대로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부르는 게 아니라, 예수피를 외치며 악한 영들의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악한 영들의 공격을 인지하지 못하고 당하게 되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들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기도할 때도 전심으로 기도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지지부진한 기도태도를 앞으로도 지속한다면 성령과 동행하는 삶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래서 낮에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틈나는 대로 예수피를 외치면서 악한 영과 싸우고, 죄가 인지되면 즉각 죄를 회개하고, 예수피의 공로를 의지하며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피를 외치는 축출기도는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기 위해 죄를 인지하고 싸우며, 죄를 짓게 하는 악한 영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기도일 뿐이다. 그래서 아침과 밤에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가 더욱 깊어지고 성령과의 교제가 친밀해지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기 바란다. 그러나 여전히 낮에도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가 지지부진하고 성령이 함께 하는 증거나 변화, 능력과 열매가 없다면, 하루 종일 예수피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예수피의 능력이 당신의 가슴에 새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귀신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사람이 나타나야, 이전의 종교적인 신앙을 버리게 된다.

 

치과치료의 혁명이라고 일컫는 임플란트 시술법이 개발되자 두부류의 치과의사들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이전의 치료법을 고집하며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의사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전의 치료법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고 새롭게 떠오른 임플란트 시술법을 배우고 익혀서 치료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사람이다. 성령의 사람을 증명하는 것도 임플란트와 같다. 임플란트 시술법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틀니를 잘 만들어 끼우는 데 익숙한 치과의사들이 각광을 받았다. 현대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인기 있는 목회자들이 누구인가? 해박한 성경지식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교문을 쫀득쫀득하게 전달하는 데 선수인 목회자들이다. 그래서 교인들이 설교를 듣고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이런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듣기 좋아하는 축복이나 구원을 선포하며 덕담이나 격려, 위로를 가슴이 저려오도록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그들이 세상에 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죄와 싸워 이기고 죄를 부추기는 귀신을 쫓아내며, 귀신들이 일으킨 정신질환과 고질병에서 해방되며 온갖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은혜로운 설교를 들어서 자기만족과 자기 위안으로 삼는 것에 그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은혜를 많이 받으려면 방송이나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하루 종일 은혜로운 설교를 틀어놓고 들으면 된다. 그런 목회자가 바로 틀니를 잘 만들던 시절에 잘 나가던 치과의사와 다르지 않다. 이 시대는 성령의 시대이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영혼과 삶의 문제를 해결하며, 기적과 이적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영혼을 구원하는 성령의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성경에 성령의 능력을 떠들어 댄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 눈앞에 성경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적과 이적으로 성령의 능력을 드러내면서 성령의 사람이 되는 길을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그 기로에 우리 영성학교가 있다. 952년 스웨덴의 정형외과 의사인 브레네막교수가 티타늄이라는 금속이 뼈에 잘 붙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임플란트라는 시술법이 세상에 나와 치과치료에 역사적인 전기를 마련했듯이, 우리 영성학교도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교단신학자들의 주장을 교리로 정해서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교회지도자와 교인들을 만드는 교회에서, 이적과 기적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정신질환과 고질병을 치유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성령의 사람을 배출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기점에 서 있다. 영성학교가 시작된 지 5년차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교인들은 기적과 이적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치유하면서 성령의 능력을 통해 영혼을 구원하는 성령의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성령의 능력을 눈으로 보고 화들짝 놀래서, 그들이 그간 해온 예배의식과 신앙행위들을 반복하는 종교인에 불과했다는 것을 인정하려면, 임플란트 시술이 얼마나 놀라운 치료방식인지 입소문이 나서 세간이 소문이 자자해야 한다. 그래야 귀신들에게 공격을 받아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리며, 건조하고 냉랭한 마음과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영혼들과,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새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찻잔속의 폭풍에 불과하다면, 아무도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처럼 귀신들이 포로로 붙잡혀서 생명과 영혼이 사냥당하다가 지옥 불에 던져지는 재앙이 지속될 것이다. 이제 여러분의 가족과 친구와 사랑하는 우리나라와 민족의 운명은 당신에게 있다. 당신들이 성령의 사람이 되어 놀라운 성령의 사람을 드러낸다면, 성령이 내주하는 영적 습관을 배우고 훈련받기 위해 몰려올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불길이 일어나서 미혹의 영에게 속아서 고통 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영성학교를 세워주셨고 당신을 부르신 이유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