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목사의 매일 칼럼

쉰목사의 매일 칼럼

제목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등록일 2019년 03월 10일 01시 55분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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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칼럼의 제목은 오늘아침 인터넷 뉴스의 카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이런 얘기쯤은 어렵지 않게 듣는 뉴스이기 때문이다. 10년 전만해도 세계의 핸드폰시장을 장악한 회사는 핀란드의 노키아였다. 철옹성 같은 노키아도 2G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서, 삼성과 애플에 밀려서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졌다. 카메라필름의 대명사는 코닥이다. 그러나 필름 없는 카메라가 그 회사에서 처음 별명 되었어도, 필름시장의 대부로 올라앉은 그들이 누리던 호황이 천년만년 갈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필름이 있는 카메라를 모르는 이들이 지천이다. 오늘 인터넷 뉴스의 희생양은 야후였다. 2000년대 초입만 하더라도 야후는 세계의 인터넷검색시장을 지배했다. 그러나 구글이 들어와 왕좌를 빼앗자 그들은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한방에 훅 간 이유는,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대 진리를 가볍게 알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안일하게 누려왔던 혜택이 앞으로 쭉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떠밀려 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러한 일이 영혼의 세계에도 있다. 당신의 믿음을 믿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하나님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삶에 적용하여야 할 것을 명령하고 계시다. 그래서 당신은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계신가? 뭐 그렇다고 하기는 그래도, 아니라고 할 크리스천도 별로 없을 것이다. 주일성수를 성실하게 하고 있으며 십일조를 비롯한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자신을, 몰라줄 하나님이 아니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날마다 변화가 되고 있는가? 변화가 뭔지 모른다면 나비를 생각하면 된다. 나비의 애벌레가 무럭무럭 자라면 입으로 고치를 만들어 번데기가 되며, 번데기가 나중에는 화려한 나비로 변신한다는 것쯤은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징그러운 애벌레의 모습에서 누구나 감탄하는 나비의 변신은 누구나 깜짝 놀랄만하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변화의 모습이다. 그래서 당신은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했을 때, 확연한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아쉽게도, 당신을 포함해서 우리네 주변에 그런 크리스천들은 거의 없다. 10년 전의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나 별 차이가 없다. 아니, 과거에는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지금은 심드렁하게 교회마당을 밟고 있는 이들이 더 많이 보인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얼마 전 성령께서, 주가 쓰시는 사람은 누구든지 막론하고 새것을 쓰신다고 말씀하셨다. 새것이란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운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 안에 들어와서 육체의 사람에서 그리스도의 사람, 즉 성령의 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된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드높은 교회직분을 자랑하는 당신은, 육체의 사람에서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는가? 육체의 사람은 신앙생활의 목적이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세속적인 유익을 달성하는 데 있다. 교회에 와서 부유해지고 성공하려는 세속적인 사람이 그렇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은 종교적인 사람이 그렇다. 성령의 사람은 자신을 감추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삶의 목적이고 신앙의 목표이다. 그래서 당신은 신앙의 연륜이 오래될수록, 벼가 익어서 고개를 숙이듯이 성숙되고 완성되어 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가고 있는가?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9:16,17)

 

위의 구절은 너무 유명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예수님의 비유이다. 예전에 성령께서 이 비유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새 부대는 새 믿음이고, 새 술은 성령이라고 말씀하셨다. 새로운 믿음은 성령이 들어오셔서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1분짜리 영접기도를 하면 성령이 자동적으로 들어오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우리네 교인들이 죄다 믿음의 능력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으며, 성령의 능력과 변화, 증거와 열매를 보여주고 있는가? 없다면 없는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없는 데도 있다고 하니까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성령이 없다면 당신의 영혼은 죽은 목숨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다가, 죽으면 불이 활활 타는 영원한 지옥으로 던져질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예수님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잘라 말씀하셨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만이 그리스로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자신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하지만, 성령의 능력이 없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보라. 그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그들은 겁 많고 무식한 어부에서 대제사장과 논쟁을 할 정도로 담대한 사람으로 변했다. 그들이 성경의 깨달음만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놀라운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고질병을 치유하고 이적과 표적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과거나 지금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아니 예전에는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신앙행위를 하였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시들해버리고 사그라지고 있다. 그 이유는 성령이 떠나가신 교회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있다면, 이 땅에서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다가 지옥 불에 던져질 것이다. 필자의 말을 우습게 여기지 마시라. 필자는 다만 예수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 당신이 심판대 앞에서도 지금의 안일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일지 어쩔지 사뭇 궁금해진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