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목사의 매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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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란 행위가 아니라 태도가 중요하다.
등록일 2019년 03월 07일 00시 01분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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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란 눈에 보이지 않은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을 만나 그분께 경배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며 요청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기도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 요청하는 행위로만 알고 있다. 이는 채권자가 채무자를 만나자 마자 채무변제를 요청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채무자가 아니라 주인이시다. 우리는 하인으로서 그분의 선처를 호소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통해 요청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하고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시다. 입으로 요청해야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지전능한 분이시다. 그런데 굳이 기도라는 행위를 통해 요청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믿음을 보시기 위해서이다.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그 믿음을 드러내는 행위가 바로 기도인 것이다. 믿음 없이 기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도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여서 그렇다. 사실 기도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기도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그분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이게 바로 기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기도가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행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벽 이른 시간에 경건한 교회가 아닌 시끌벅적한 시장한복판에 있어도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가만히 부르기만 해도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물론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에 그렇게 약속하셨다. 이렇듯 기도는 부담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틈만 나면 하나님을 떠올리며 그분을 찾고 부르며 찬양하고 감사하는 게 최상의 기도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기도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한다. 기도는 새벽에, 그것도 교회를 찾아서 해야 한다는 그것이다. 그래서 아예 기도를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자비로우신 아버지인신 하나님은 육체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자주 찾아 주는 자녀들을 가장 기뻐하신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누구나 최고의 기도를 할 수 있다.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지하철에서 열차를 기다리거나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얼마든지 기도를 할 수 있다. 필자는 운동을 하거나 운전을 할 때는 항상 기도하는 버릇이 있다. 기도처럼 쉬운 게 없다. 그냥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기만 하면 최상의 기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이처럼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있어 틈만 나면 그분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삶으로 채우게 된다. 기도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언제 어디서나 그분을 가만히 부를 수만 있다면 그분이 기뻐하는 기도가 된다.

기도에 집중이 안 되거나 기도하기 싫다면 하나님만을 줄기차게 불러라

기도의 목표는 일상의 삶에서 쉼 없이 기도하는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이 상태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지에 오르는 것은 오랜 기도훈련을 통과해야하며, 그 이후에도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기도의 고삐를 놓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기도란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삶의 현장에서 항상 기도하는 상태를 유지하기위해서는 아침과 밤, 방해받지 않은 시간에 1시간 이상 깊게 기도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 때 받은 영적 충만함이 하루 종일 이어져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틈만 나면 기도하는 능력이 생긴다. 삶이 바빠지고 피곤해져서 이런 시간을 줄이면 기도의 탄력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비슷하게 기도의 모습은 보여주고 있더라도 기쁘고 평안한 마음의 상태와 풍성한 기도의 열매는 형편없이 쪼그라진다. 동시에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은 갈급함이 생겨나는 이유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도할만한 환경이 항상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은 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악한 영이 조종하는 사람의 공격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한다. 환경에 지배를 받기에 자신이 원하지 않은 상황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기도하려고 해도 몰입이 되지 않고 잡념이 머릿속을 헤집고 있다. 또한 낮 시간의 일상의 삶에서는 깊은 기도를 할 수 없다. 온갖 소음의 방해와 더불어 하고 있는 일 때문에 방해받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기도에 몰입할 수 없을 때는 여러 기도를 하고자 하지 말고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는 것을 반복해도 대단한 효과가 있다. 필자는 방해받지 않은 기도시간에도 기도를 시작하며 적어도 30분은 간절히 하나님을 부르면서 찬양하고 감사하는 시간으로 채운다. 30분을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30분정도는 그렇게 하게 된다.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면서 찬양과 감사를 반복하게 되면 성령이 충만해져서 기도에 빨려 들어가는 상태가 되는데, 이런 상태가 되어서야 비로소 사역이나 나 자신을 위한 기도와 중보기도에 들어간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기도가 되지 않으면 다른 기도를 시도하지 않는다. 복잡한 일이 생겨 몰입이 되지 않을 때는 무려 3시간 이상 꼼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는 기도를 한 덕분에 허리가 무리가 생겨 고생했던 적도 있다. 기도란 하나님께 무엇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을 찾고 부르며 찬양하고 감사하고 경배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도모습이 없이 자신이 원하는 기도목록만을 내뱉는 행위는 기도가 아니라 주문에 불과하다. 목이 터져라 외쳐도 하나님이 듣지 않는 기도라면 시간낭비일 뿐이다. 하루 종일 기도의 삶을 살려면 틈만 나면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런 상태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상태이다.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증거이다.

기도는 행위가 아니라 태도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모습으로 희생적인 기도를 우선으로 친다. 집에서 기도하는 것보다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나가면 점수를 후히 준다.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라도 하고 있으면 대단한 가산점이 붙는다. 일수가 많이 붙은 작정기도도 인기가 높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각이나 교회의 관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겠는가? 성경에는 새벽기도가 다른 시간대의 기도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장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말하는 교회는 헬라어 ἐκκλησίᾳ(에클레시아)는 장소가 아니라 공동체를 말한다. 사실 하나님은 특정 장소가 아니라 우리 마음에 계시다(눅 17:21) 구약에도도 성전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 충만하게 계셨다(행 7:49)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기도하는 하는 것은 교회의 관행일 뿐이지 성경의 기준은 아니다. 물론 집보다 교회에서 기도하는 게 몰입이 잘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학생이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공부를 선호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는 방해받지 않고 기도하기 좋은 환경이라 그렇지 하나님이 그 장소를 선호하시는 것이 아니다. 금식기도에 관한 기대감은 대단하다. 그래서 금식기도원이 인기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경에는 금식기도를 자주 언급하였지만, 금식기도 자체가 특별한 효력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고 온전히 기도하는 모습으로서 언급했다. 성경에는 금식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는 게 더욱 효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사 58:3-6)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는 무엇일까? 기도자의 마음의 자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한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에서 보듯이 아픈 마음으로 찾아오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신다. 예수님도 교만스레 말하는 바리새인의 기도보다 가슴을 치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세리의 기도의 손을 들어주었다.(눅 18:10~14) 이렇듯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의 모습은 스스로를 낮추고 불쌍히 여겨달라면 간절히 기도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태도를 상실한 채 관행적인 기도행위에 매달리고 있는 게 작금의 우리네 크리스천의 모습이다.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말라

많은 크리스천이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나가려고 해도 바빠서 못나간다고 한다. 맞다. 새벽 5시에 어렵지 않게 잠이 깰 수 있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단지 10분 기도하는 데 교회에 오가는 시간만 30분이 넘는 사람들도 많다. 교회가 아니면 기도할 수 없는 이 분위기는 과연 성경적인가? 물론 혼자 기도하는 게 어려운 건 맞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제대로 된 기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수월해 보인다고 붙들고 있다면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분을 만나려면 우리의 영혼을 만난다. 영이시기 때문에 장소나 시간에 제한이 없다. 새벽뿐 아니라 밤늦은 시간도 좋고 아님 한낮도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장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나 집, 기도원이나 자동차 안에서도 그분을 부르면 언제나 달려오신다. 그러나 우리는 새벽 5시30분에 열리는 교회의 새벽기도회에서나 만날 수 있다고 제한해 버린다면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기도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은 하나님을 만나는 훈련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간절한 마음만 있다면 다른 것들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니다가 한평생을 마쳤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를 소유한 바탕은 끊임없는 기도에 있었을 것이다. 그는 어디에 가든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다. 언제 어디서든 기도의 삶을 살았음은 물론이다. 어린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던 도중 하나님의 천사를 목격했다. 그리고는 기도했다. 그리고 이십 여 년이 지나 다시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도록 기도의 씨름을 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고 찾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고 기도의 필요성에 무지해서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못한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왜 기도를 해야 하는 지 제대로 알고 있다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을 간절히 불러대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가장 많이 기도하는 장소는 자동차 안이다. 평일에는 아내와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러 다니기에, 아내를 내려놓고 나면 조용한 차 안에서 기도를 시도한다. 밤에는 교회에서 기도하다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새벽이 아닌 아침 7시가 넘어서야 깬다. 그리고 곧장 샤워를 마치고 서재에 들어가 기도한다. 그래서 집과 교회에서 기도를 많이 하게 된다. 그러나 공원이나 열차 안, 병원 등을 가리지 않고 시간만 나면 기도를 시도한다. 장소나 시간을 따진다면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성경의 명령을 따를 수 없다.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은 끝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교회에 오면 설교 때마다 “믿고 기도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21:22)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빠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말을 듣는 교인들의 마음은 심드렁하기 그지없다. 하도 오랫동안 들어왔던 말이라, 교회에서만 듣게 되는 종교용어처럼 여기기 일쑤이다. 왜냐면 기도하는 것마다 다 이루어졌다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세상 사람이 없을 게 아닌가? 성경에 쓰여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라 이 말에 태클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확신이 서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말을 듣게 되면 설교 때에 자주 나오는 기독교적인 특정용어로 생각하고 지나간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라 진위를 의심하고 싶지 않지만, 왜 우리에게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걸까?

그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은 눅18:1~8에서 기도에 대한 비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내뱉으신 말씀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로 시작하시고 “인자가 다시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을 마치셨다. 이 비유는 한 가난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다니며 온갖 수모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간청하여 마침내는 소원을 이루었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기도를 시작하면 응답이 신속하게 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응답이 더디 오면 희생의 강도를 높인다. 그래도 응답이 없으면 낙심하고 중도에 포기하기일쑤이다. 예수님은 모든 기도에 응답이 온다고 말씀하셨지, 기도자가 원하는 시간에 맞추어 신속하게 응답하신 다는 말씀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는 오래 기다려도 응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오래 기도하였는가?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신속하게 응답이 오는 것도 있지만 어떤 기도는 10년이 넘도록 오지 않는 것도 있다.

평생 오만번의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영국의 목회자 조지 뮬러 역시 어떤 기도는 수십 년간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다고 책에서 고백했다. 기도를 시작하면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위배되는 기도가 아닌 이상 틀림없이 응답해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응답이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신 최상의 시간이 되라야 응답이 온다. 그 때까지는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다. 인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 요구하시는 거룩한 성품이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에 들어가 있다. 인내를 오구하시는 것은 그게 믿음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한 과부의 비유에서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여야 한다고 운을 떼셨지만, 세상에서 이런 믿음의 소유자를 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일 거라면서 씁쓸하게 말씀을 마치신 이유이시도 하다. 견고한 믿음이 없다면 기도응답도 없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는 믿음을 얻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기에 오래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도 기도를 시작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모든 기도마다 응답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