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목사의 매일 칼럼

쉰목사의 매일 칼럼

제목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
등록일 2019년 03월 06일 23시 59분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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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계는 페니실린의 발견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페니실린의 등장은 역사상 기념비적인 혁혁한 사건이었다. 1928년 영국의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세균 감염을 막아 주는 항생제 페니실린을 개발했다. 그는 황색포도상구균이 푸른곰팡이 주변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 곰팡이에서 추출한 물질을 페니실린이라고 이름 붙였다. 페니실린은 포도상구균 외에도 연쇄상구균, 뇌수막염균, 임질균, 디프테리아균 등 여러 세균에 효과가 있었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의 감염이나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된다. 폐렴에 걸렸다가 페니실린의 도움으로 살아난 영국의 수상 처칠은 “페니실린이야말로 연합국이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게 만든 숨은 공로자”라고 격찬하였다. 1945년 플레밍은 항생제를 개발한 플로리와 체인과 함께, 페니실린의 발견과 제조에 대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페니실린의 발견에 힘입어, 현대의학계는 미생물인 곰팡이, 세균 등을 죽이는 다양한 항생제의 발견이 이루어졌다. 만약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상당수의 환자들은 세균의 감염으로 죽어나갔을 것이다. 지금은 항생제 없는 치료는 상상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항생제에 대해 얼마나 알까? 단지 질병에 걸렸을 때 바이러스를 없애고 치료하는 약물정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병이 잘 안 나으면, 의사를 찾아가서 이 문제를 알려주면서 치료를 독촉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항생제에 대한 엄청난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환자에게 사용한 항생제가 효과가 없다면, 더 많이 사용하거나 탁월한 효능이 있는 다른 항생제로 대체할 것이다. 이처럼 의사들이 항생제에 대한 믿음은 일반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굳건하다. 이런 일이 교회에도 있다. 바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다. 당신이 교회를 떠올리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상징물이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고대사회의 끔찍한 사형도구였다. 이 십자가가 교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식물이 된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바로 크리스천이며, 자신들의 믿음으로 죄에서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을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래서 십자가를 목걸이나 반지의 장식물로 만들어 착용하고 다니거나 가정에도 설치하며,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칭송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다시 한 번 묻겠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굳건하게 신뢰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아니,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영접기도를 하고 나서 교회예배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교회에서 시키는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라면서 퉁명스러운 답변이 툭 튀어나올 것이다. 오홋, 그런가? 필자는 당신이 종교행위를 열심히 하는 것을 물어보는 게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신뢰하느냐고 말이다. “아참 답답하네, 무슨 똑같은 질문을 두 번씩이나 하세요.”

당신의 답변과 필자의 질문은 잘 맞아 보이지만, 실상은 핀트가 잘 맞지 않는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신뢰한다면, 날마다 죄와 피터지게 싸우는 용도로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죄에 대해 생각조차 안하고 살아가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죄란 피상적이고 관념적이다. 겨우 생각해낸 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현행법을 위반한 죄에다 도덕규범을 위반한 죄를 더한 것 정도 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죄를 위반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할 리가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세상에서 언급하는 죄와 확연하게 다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 생각과 성품을 총망라하는 단어이다. 즉 하나님의 뜻을 위반하는 것이 죄이다. 그래서 이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용서받으며, 날마다 피터지게 싸워 이기지 않는다면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그래도 필자의 말이 떨떠름하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죄에 대해 올려드리겠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6~8)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당신이 그동안 교회에서 들와왔던 죄와 확연하게 다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육체가 원하는 생각과 마음이 원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콕 집어서 말씀하신다. 그래서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죄다 하나님의 원수가 되며, 하나님이 진노를 쏟아 부으시는 대상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가르침은 우리네 교회에서 들어볼 수가 없다. 목회자들도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목회성공을 추구하고 있으며, 교인들도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세속적인 축복을 바라고 교회마당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속내나 목적과 동기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악하기 그지없다. 죄다 자신의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교회문턱이 닳도록 다니고 있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을 불꽃같은 눈으로 살펴보시는 하나님은, 우리네 교인들의 사악하고 가증스러운 마음을 읽고 계시다. 그래서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교회직분이 드높은 교회지도자들도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이유이다. 죄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다를 바 없는, 율법주의자들이며 종교주의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구체적으로, 당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죄의 목록을 말씀드리겠다.

1.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38)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3)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당신이 짓는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와서 그분과 깊은 교제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하루에 10분도 기도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사랑하는 애인이 있는데, 하루에 10분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하나님을 만나려 하지 않는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지키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해보여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콕 집어서 말씀하고 계시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냥 교회에서 요구하는 예배의식과 신앙행위를 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종교적인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이 어떤 종교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증거가 삶과 영혼에 넘쳐날 것이며, 그런 사람은 시시때때로 하나님을 찾는 기도를 인생의 즐거움으로 삼고 있을 것이다.

2.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죄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당신의 이웃이 누구인가?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며, 특히 가족은 특별한 이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웃을 사랑하는 게 하나님의 두 번째로 큰 명령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미움, 시기, 질투, 짜증, 분노, 싸움으로 대한다면 당신은 커다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는 미워하고 짱을 내고 분노를 폭발하는 이유를, 상대방이나 환경, 그럴 수 없는 상황으로 돌려버리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변명을 하기 일쑤이다. 하나님은 미워하고 화를 내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화는 내는 게 죄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렇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는데도, 회개할 생각도 하지 않고 죄와 싸우려 하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겠는가?

3.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

크리스천에게 당신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고 기가 막혀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하나님을 믿으니까 영접기도를 마치고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해오고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행위는 믿음의 시작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셔야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그분은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대자연을 다스리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당연히 전지전능하신 당신의 주인이시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분의 자녀라고 믿는다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으며 세상에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의 상태를 살펴보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폭적으로 믿고 있다면 평안과 기쁨과 자유함이 넘쳐나고, 감사가 입에서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거꾸로 염려, 걱정, 두려움, 불안, 절망, 좌절, 의심, 자포자기, 실망 등의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증거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면서, 자신이 상태가 불신앙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마14:25~32)

위 사건을 보자.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담력을 얻어서 자신도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물위를 걷다가 갑자기 풍랑을 보고 두려워하자 물속으로 빠지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는가? 믿지 않았으면 예수님의 제자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물위를 걷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다만, 풍랑을 보고 잠시 두려워하였던 것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하다. 물에 빠져 죽게 될 지경에 놓인 것이다. 당신이 교회에 열정적으로 다니는 것과 상관없이, 당신이 암울한 상황, 어두운 환경, 무능하고 무기력한 자신의 처지, 불길한 조짐, 부정적인 소식을 접하고 염려하고 적정하며 두려워하고 있다면 당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불신하고 있는 증거일 뿐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인들은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신뢰하고 믿고 인생을 맡기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이 있다고 떠벌이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죄를 이겨내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믿음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이 어떤 노력을 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지니고 세상에 나왔으며, 죄를 좋아하고 죄를 추구하는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당신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이천년 전에,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셨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면 죄를 용서함 받으며 죄와 싸워 이길 능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당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믿고 있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당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하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라. 우리네 교회는 자기 확신의 자의적인 믿음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경적인 믿음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자신이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믿음을 평가하고 합격했다고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죄를 이기고, 죄를 용서함을 받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래서 당신이 보혈의 능력을 믿는다면 죄에 대해 해방되어서, 더 이상 죄로 인한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났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교회직분이 드높아도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고 있다면, 여전히 죄의 영향으로 죄를 짓게 하는 악한 영의 포로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당신의 영혼과 삶을 해방시킬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1~7)

위의 구절은 너무도 유명해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는가? 이는 자의적이고 자기 확신의 믿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영이자 하나님의 영이자 성령 안에 살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즉 성령 안에 살고 있다면, 성령의 증거와 변화, 능력과 열매로 증명해보여야 할 것이다. 성령과 동행하는 성령의 사람을 보라. 기적과 이적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귀신들이 일으킨 고질병을 치유하는 능력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당신에게서 그런 능력을 발견할 수 없다면, 여전히 당신의 죄의 포로가 되어 귀신의 노예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에게 들어오셔서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시는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보이는 자들이다. 죄를 미워하고 죄와 피터지게 싸우는 자들이다. 자아가 죄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자아를 부정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 보이는 자녀들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59:2)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죄를 짓게 하는 미혹의 영인 귀신이 공격하는 곳이 어디일까? 바로 뇌가 저장되어 있는 머리이다. 미혹의 영은 머리를 타고 앉아 자신의 생각을 넣어주어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을 살피고 분별하여서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걸러내지 않으면, 미혹의 영이 넣어주는 생각을 받아들여서 죄를 짓고 죄인이 되어 포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별의 능력은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은사)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분별의 은사를 주시는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녀들이다.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하나님을 찾으며 그분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사모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사모하는 자녀들은, 자신의 머리에 들어오는 생각을 감찰하고 미혹의 영이 넣어주는 생각을 잘라내야 한다. 미혹의 영이 넣어주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귀신의 소리를 듣는 사악한 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필자만의 비법을 알려드리겠다.

‘너희들은 나를 못 보지만, 나는 너희들을 보고 있다. 성경 안에서 나를 보거라.’

위의 말씀은 오래전 영성학교를 시작하기 전에, 성령께서 필자부부에게 해주신 말씀이다. 그 때는 이 말씀이 필자에게 위로나 격려가 되지 않았다. 당시 필자부부의 삶은 고단하기 그지없었으며, 앞이 보이지 않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과 다름없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금은 필자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도훈련을 하러 전국에서 찾아오고 있으며, 영성학교를 교회공동체로 삼아 매주 예배를 드리는 식구들도 백오십 명이 넘는다. 필자의 삶도 그 때와 비교하면 등 따습고 배불러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필자는 고단했던 시절을 잊고 싶지 않아서, 위의 말씀을 책상위에 사진틀에 붙여놓고 매일 새롭게 마음을 다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 뒤에 계셔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신다고 생각하면 느슨했던 마음이 긴장되며, 하나님의 뜻을 향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말씀이 비단, 필자부부에게만 특별하게 해주신 말일까? 아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1~4)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위의 구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신다고 선포하신 내용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지도 알고 계시며, 나의 뜻과 계획을 투명하게 알고 계시다. 문제는 당신은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이,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으면서 회개할 생각도 없으며, 죄와 싸울 생각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네 교회지도자나 교인 중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무지하며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할 생각이 없다. 이런 일이 영성학교에서도 동일하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성령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도 보지 않는데서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 죄와 싸우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몸부림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생각하고 육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하루 종일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시고 있다는 생각을 잊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순간순간 하나님이 내 등 뒤에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시며, 내 생각과 계획을 환하게 읽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면 하나님을 부르며 찬양하며 감사하고, 사소한 죄라도 인지하며 피터지게 싸우고, 설령 죄에 넘어졌다면 사람과 하나님께 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머리에 들어오는 모든 생각들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촘촘하게 분별하기로 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증거나 깨달음이 없으면 즉각 중단하고, 하나님의 뜻인지 알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계획이나 생각을 아무 생각 없이 말하고 실행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세상의 지혜를 따르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대로 결심하고 선택하고 실행한다. 그러나 열매가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인지 알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종이자 피조물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의중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극악무도한 죄이다. 그래서 혹독하게 기도를 해도 성령께서 내주하지 않는 이유이다. 성령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뼛속까지 하나님의 도구로 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차서 하루 종일 하나님을 부르며 깊고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을 자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기도하더라도 여전히 성령의 사람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시때때로 자신의 등 뒤에서 하나님의 시선을 느껴보시라. 시선이 느껴지는 시간으로 하루해를 가득 채운다면, 필시 성령이 내주하시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하나님의 시선을 잊는 시간이 많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도 알고 계시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되려면,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죄와 피터지게 싸워 죄를 이기는 정예용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만이 바로 성령이 안에 들어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드러내게 하는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십자가의 보혈을 지식으로 쌓아주는 것에 그쳐서, 정작 삶의 현장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들이 일으킨 고질병을 치유하는 성령의 능력에 무지하다. 이들은 이미 미혹의 영에 속아 넘어간 종교적이고 세속적인 기독교인에 불과하다. 죄와 싸워 이기는 능력은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가슴에 새겨주셔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성령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도구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이 땅에서 쓰임을 받다가 천국에 입성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