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목사의 매일 칼럼

쉰목사의 매일 칼럼

제목 성령의 사람이 되는 비법
등록일 2019년 03월 06일 23시 56분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아시다시피, 울 영성학교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다른 학교나 훈련기관처럼,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졸업장이나 수료증으로 주지 않는다. 이곳은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와 변화, 능력과 열매가 없으면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오랫동안 기도훈련을 해왔던지 아니면 혹독하게 기도를 하고 있든지 간에, 성경에 언급한대로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필자처럼 주장하는 사람은 우리네 교회에 없다. 그래서 필자의 말이 낯설거나 이단비스무리하다고 여기시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성령이 내주하였다는 것은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과 동일한데, 성령이 함께 하시는 증거나 능력, 열매가 없다면 새빨간 거짓말이 아닌가?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교단신학자의 교리가 곧 성경말씀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필자의 주장이나 우리네 교회의 가르침이나 죄다 자신의 해석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면 누가 판단해서 옳고 그름을 정해줄 것인가? 그 일을 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대 앞에서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필자가 영성학교를 연지 4년이 훌쩍 넘었지만, 성령의 사람이라고 인정할 만한 제자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필자가 마주하고 있는 딜레마이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기도해야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곱씹어보겠다.

‘너희들은 나를 못 보지만, 나는 너희들을 보고 있다. 성경 안에서 나를 보거라.’

위의 말씀은 오래전 영성학교를 시작하기 전에, 성령께서 필자부부에게 해주신 말씀이다. 그 때는 이 말씀이 필자에게 위로나 격려가 되지 않았다. 당시 필자부부의 삶은 고단하기 그지없었으며, 앞이 보이지 않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과 다름없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금은 필자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도훈련을 하러 전국에서 찾아오고 있으며, 영성학교를 교회공동체로 삼아 매주 예배를 드리는 식구들도 백오십 명이 넘는다. 필자의 삶도 그 때와 비교하면 등 따습고 배불러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필자는 고단했던 시절을 잊고 싶지 않아서, 위의 말씀을 책상위에 사진틀에 붙여놓고 매일 새롭게 마음을 다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 뒤에 계셔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신다고 생각하면 느슨했던 마음이 긴장되며, 하나님의 뜻을 향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말씀이 비단, 필자부부에게만 특별하게 해주신 말일까? 아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1~4)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위의 구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신다고 선포하신 내용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지도 알고 계시며, 나의 뜻과 계획을 투명하게 알고 계시다. 문제는 당신은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이,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말하자면,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으면서 회개할 생각도 없으며, 죄와 싸울 생각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네 교회지도자나 교인 중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무지하며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할 생각이 없다. 이런 일이 영성학교에서도 동일하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성령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도 보지 않는데서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 죄와 싸우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몸부림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생각하고 육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하루 종일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시고 있다는 생각을 잊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순간순간 하나님이 내 등 뒤에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시며, 내 생각과 계획을 환하게 읽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면 하나님을 부르며 찬양하며 감사하고, 사소한 죄라도 인지하며 피터지게 싸우고, 설령 죄에 넘어졌다면 사람과 하나님께 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머리에 들어오는 모든 생각들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촘촘하게 분별하기로 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증거나 깨달음이 없으면 즉각 중단하고, 하나님의 뜻인지 알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계획이나 생각을 아무 생각 없이 말하고 실행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세상의 지혜를 따르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대로 결심하고 선택하고 실행한다. 그러나 열매가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인지 알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종이자 피조물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의중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극악무도한 죄이다. 그래서 혹독하게 기도를 해도 성령께서 내주하지 않는 이유이다. 성령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뼛속까지 하나님의 도구로 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차서 하루 종일 하나님을 부르며 깊고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을 자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기도하더라도 여전히 성령의 사람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시때때로 자신의 등 뒤에서 하나님의 시선을 느껴보시라. 시선이 느껴지는 시간으로 하루해를 가득 채운다면, 필시 성령이 내주하시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하나님의 시선을 잊는 시간이 많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도 알고 계시라.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