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훈련 코칭

기도 훈련 코칭

제목 2월3주 영성학교 코칭후기
등록일 2019년 03월 04일 22시 22분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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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3주 충주영성학교 훈련 및 코칭후기

기도 훈련의 길잡이
목사님과 코치분들의 코칭 내용입니다


동기부여


아담이 죄를 짓기 전과 죄를 짓고 난 후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로마서에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고 선언하였는데 죄가 들어왔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요? 이것을 잘 알 때 우리는 더 전심으로 기도하며 영적 싸움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도 사단의 유혹은 있었습니다. 아담이 완벽하게 거룩하게 창조된 상태에서 사단은 유혹했습니다. 사단이 넣어준 생각이 들어와 있는데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아는 상태에서 죄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나서, 즉 아담이 범죄한 이후 가인은 유혹을 받을 때 어떠했나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으시자 열 받은 가인에게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다’고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십니다. 제사를 열납하시든 안 하시든,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인데 하나님의 안전에서 화를 낸 것입니다. 가인은 화내고 있는 것이 죄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귀신은 화내고 있는 가인에게 억울함, 분노, 증오 등을 넣어주고 있었습니다. 가인은 죄라고 가르쳐주셔서 죄를 인지한 후에도 말씀을 안 듣고 범죄합니다. 귀신이 넣어준 생각들인데, 마치 자기 생각이라고 속여서 넣어줄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 바로 죄가 들어온 상태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한번 예를 들어봅시다. 아이들은 말을 못 하니까 울음으로 의사표시를 합니다. 신생아 단계를 지나게 되면 배가 고프다고만 우는 게 아니라 맘대로 안 되면 사납게 울어 재끼는데, 아무리 달래도 그치지 않고 성질을 부리며 못마땅함을 표시합니다. 죄를 이미 받아들인 것입니다. 말은 못 해도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게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된 이 저주의 무서움입니다. 아담으로 인해 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죄로 변질되었다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죄를 좋아하며 내가 원해서 선택하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죄를 안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해진 것이며, 태어나면서부터 죄의 노예로 태어나서 노예로 살다가 노예로 죽는 저주의 삶이 인류에게 시작된 것이죠. 이런 우리에게 내밀어주신 손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역이고, 이 손을 잡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죽기 살기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 아니면 저는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너무나도 유명하며 오해되어 왔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잘해서 받는 것이 아니고 잘못해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절망에서, 전혀 길이 없는 곳에서, 아예 길도 없고 방법도 없는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서 받는 것입니다. 죽기 살기로 기도한다는 말은 이런 절망에서 가난함이 나와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고 물주는 일은 목사님과 코치진들이 하지만, 내 마음의 변화와 열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난한 마음은? - 아이가 엄마의 품을 사모하는 마음

마음을 하나님께 두기 싫어하게 된 것은 바로 죄를 지은 순간부터입니다. 죄는 언제부터 생겼을까요? 아마도 사단이 범죄함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보좌를 탐하여 반역함으로 스스로가 죄(거짓)의 창시자이자 본체가 되었습니다. 죄를 짓기 이전과 이후 하나님과 관계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죄를 짓기 이전에는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어린아이에게 엄마와도 같은 관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아담을 유혹할 때 범죄 하면 하나님 같이 된다고 유혹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같이 된다는 것은 즉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것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마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난함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지금 우리 마음에 들어와 있는 미혹은 바로 내 힘으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다는 마음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이 가졌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계명을 다 지켜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다고 여기고, 맹렬히 율법의 조항을 지킨 것처럼 우리도 그런 식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한번 죄짓기 이전 아담과 하와는 어떤 관계를 맺었을까를 생각하며 나를 점검해보시기를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기도의 행위 자체가 아니라 기도 속에 올려진 우리의 가난한 마음입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난한 마음은? - 하나님으로 배고픈 마음

죄가 들어올 때를 생각해 봅시다. 죄가 들어오기 전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는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깨물었을 때, 뱀이 말한 대로 더 좋아지고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같이 되었나요? 눈이 밝아진 순간 하나님같이 된 것이 아니라 자유함, 평안, 기쁨은 사라지고 자신의 벗은 몸이 보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사라졌으므로 하나님을 부르고 그 뜻을 여쭤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 없이 자신의 의지 가운데 자기 방식으로 직접 옷을 만들어 입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에서 하나님이 사라지는 순간, 그때가 바로 범죄한 순간이죠. 마음이 비면 허전하니까 뭔가를 찾게 됩니다. 우리 마음이 공허해진 이유는 마음에 하나님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하나님이 고픈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난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으로 고파있나요? 진실로 그러하다면 틈이 생길 때 다른 것 했겠습니까? 마음이 정말 가난하다면 멈추지 않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난한 마음은? - 돌이키는 마음

이사야 55장은 우리가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해 은을 달아주고 배부르게 못 할 것을 위해 수고하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윗에게 허락하셨던 확실한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윗에게 허락하셨던 확실한 은혜란 우리 각 사람이 메시아와 영원히 함께하며 왕 노릇 하게 되는 새 언약의 수혜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믿는 자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이 약속의 수혜자가 된다고 하셨지요?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 자기의 불의한 생각과 길을 버리고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많은 분들이 본질적인 부분에서 깨지지 않고, 자신을 빈 그릇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나의 사고방식, 생활방식과 습성, 가치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입으로만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확실한 돌이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극렬하게 속에서 저항할 것입니다. ‘그것마저 포기하면 네가 완전히 없어지는 거잖아’, 그렇게 다 포기하면 어떻게, 무슨 낙으로 살아?‘, ’아니, 네가 맞는 것도 있잖아? 다 틀린 것도 아닌데 왜? ‘하면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멘! ‘하고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물음표를 찍으면서 말이죠. 지금까지 기도하고 있는데 왜 안 오시냐고요?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회개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왜 버리고 돌이켜야 하냐면,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길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과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 길을 얼마나 버리기 싫어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물어볼 때조차도 내 생각대로 하고 싶어서 묻습니다. 기회가 올 때마다 내 마음을 휘휘 저어보셔야 맑은 물 같아 보이는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는 찌끼가 올라옵니다. 그때 주저 없이 회개하고 버리십시오. 버리고 있는 게 없는 사람은 사실 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