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훈련 코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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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4주 영성학교 코칭후기
등록일 2019년 03월 04일 22시 14분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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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4주 충주영성학교 훈련 및 코칭후기

 

기도훈련의 길잡이

목사님과 코치분들의 지도내용입니다

 

 

동기부

 

 

영적 세계를 모르면…….

 

아담이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가시와 엉겅퀴를 생산하는 땅에서 땀 흘리며 수고하며 살다가 죽었는데, 그로 인하여 세상에 죄가 들어와서 모든 인류에게 죄의 효력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 한구석에는 아버지가 포도를 먹었다고 아들의 이가 시지 않은 것처럼,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자식이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영적 세계를 모르면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다스린다고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는데 왜 사단을 세상 임금이라고 부르는지, 그럼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둘이란 말인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구약에는 잘 등장하지 않던 귀신들이 신약에 오면 왜 그리 많이 나타나는 것인지, 그리고 지금은 왜 귀신이 박물관에 있는 공룡 화석처럼 현실에서는 영향력이 없는 존재 같은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된다고 하셨는데, 새벽기도니, 각종 희생 봉사로 파김치가 되도록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나는 고질병에다가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여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인지 도저히 풀리지 않습니다.

 

오직 기도하는 자만이 이러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불러본 자만이 영적 세계의 실체에 직면할 수 있으며,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성격 파탄, 경제 파탄, 관계 파탄, 건강 파탄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영적 전쟁을 모르면 영성 학교에서 주장하는 귀신의 활동성과 움직임, 전략과 공격방법에 대한 정보가 뜬금없는 설화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진정한 기도의 사람들이 없어서, 무덤과 같이 변질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무덤화는 90년대 번영신학이 한국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를 기점으로 해서 서서히 진행되다가 이제 작은 교회 지도자들은 생활고에 지쳐서 문을 닫고, 각기 제 길로 가고 있으며, 화려하고 덩치만 불린 대형교회만 간신히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이색종교 단체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속수무책으로 당해 교세를 넓히고 있는 이유도, 기도없는 우리네 교회가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몇 년 이내에 유럽의 길을 따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꺼져가는 기도의 불씨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의 일꾼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가정이 회복되며, 악한 영과 일당백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모세와 같은 정예용사를 일으키기를 원하십니다. 이 목적으로 영성 학교는 세워졌으며, 맹렬하게 이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1. 기도훈련 입문

 

영성 학교가 시작된 지 4년이 넘어가도록 문을 닫지 않고 있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면서 영적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생리현상을 동반한 영적 현상들이 일어나고 귀신들이 나가기 시작합니다. 훈련 초기에는 내게 있는 문제들이 정확히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지만, 귀신이 나가면서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면이럴 수가!’ 놀라게 됩니다. 고질병들은 두 가지 원인으로 일어납니다. 귀신이 직접적인 원인 경우도 있고, 오염 등의 환경문제나 유전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에게 귀신이 고통을 주어 문제를 악화시키는 경우입니다. 정신질환은 뇌를 다치지 않은 이상 대부분 귀신이 주원인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귀신이 나가게 되면서 증상이 좋아지기 시작하기 때문이죠. 개인이 가지는 믿음에 따라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들이 급속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서서히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귀신들은 아담의 범죄 이후 변질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에게 욕심을 부추겨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귀신이 축출되면 관계가 회복되고, 가정이 회복되고, 병이 낫고, 악성 부채가 기적적으로 해결되는 일들이 일어나는데, 성품의 변화는 귀신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내공이 자라가야 하므로 시간이 지나야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기도를 하게 되므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기적을 경험한다고 해서 반드시 믿음이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을 늘상 따라다니며 기적을 구경했던 자들이 추산 2만여 명쯤 되는데 그 중,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자들이 500여 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중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기억하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자들인 약 120명 됩니다. 그렇게 스펙타클하고 드라마릭ㅎ한 광경을 보고도 2만여 명 중 120명만 성령을 받은 것이죠. 영성 학교에서 기도훈련을 하고 영적 세계를 맛보고 기적을 좀 경험했다고 해서 느슨해져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기도를 하고 있는지 나는 지금 어디에 왔는지 살펴보십시오.

 

2. 기본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본적인 삶의 태도


기도하는 사람의 최종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얻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15:5)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축복의 약속을 주셨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셨던 것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 안에 영생과 신령한 축복들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브람처럼 믿음의 사람의 자리에 오르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건강, , 이런 게 아니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기도하고 있고 온종일 기도하고 있다고 하지만 내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장에도 육체의 할례가 참 할례가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것처럼, 마음이 바뀌고 그것이 행동으로 확인되어야 합니다. 나의 시야는 어디를 향해 있습니까? 내 말을 잘 안 듣는 내 자녀나 내 배우자에게 내 시선이 가 있으면 아직 먼 것입니다. 모든 상황은 나부터 바꾸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내 말을 살펴보십시오.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또는 예수피로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안 사라져요하고 꼬리를 붙이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데요~ ’하며, 말끝에 부정적인 꼬리를 붙이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는 항상 예가 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기도하겠습니다.’만 생각하십시오. 이길 생각도 하지 마시고 그저 싸우겠습니다.’만 말하십시오. ‘기도하면 오신다고 하셨지!’,‘싸우면 이긴다고 하셨지!’ 하면서 끝까지 기도하고, 끝까지 싸우십시오.

하나님을 부르면서 그 뒤에 내가 원하는 것을 따라 붙이고 있는 것은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부르기만 해도, 왕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자로서의 감사와 만족을 누리는 수준까지 가야 하나님께 인정받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값진 보배로 여기는 마음으로 부르고 있어야 합니다. 가장 보배로운 분을 가장 보배롭게 여기지 못하는 자에게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대로 살려고 죽을 각오로 하나님을 부를 때 마음에 참된 변화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마음에 이르는 길이 순종입니다.

 

아브람이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17:1)

 

하나님을 구하는 우리,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관심을 구하는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범사를 행하여 완전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범사에 하나님 앞에서 행할 수 있나요? 하나님을 쉬지 않고 부르는 그 시간이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시간입니다.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태도를 취할 때의 축복

 

민수기에는 모세를 반역한 고라와 나단과 아비람이 나옵니다. 그가 대적한 결과 땅이 산채로 그들을 삼키고 그에 속했던 자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태워버립니다. 이 불행한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고라의 자녀들은 그 아비의 길을 따르지 않고 살아남았으며 이후 솔로몬 때에는 성전에서 찬송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42~45편과 시 84~88편은 고라 자손의 찬송이었습니다. 우리가 불행한 일을 당할 때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마귀에게 부추겨져서 분노와 쓴 뿌리를 품을 수도 있고, 죄의 길을 따르지 않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불행한 일들이 생기지 않았다면 기도하려고 충주 시골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평온히 잘 사는 자들은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좀 더 좋은 환경이었더라면……. 좀 더 좋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하면서 좌절과 절망과 쓴 뿌리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리려 아픔을 거울삼아 하나님께 나아가자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귀하게 사용하시는 것을 봅니다.

 

4. 기도하면서 밟기 쉬운 덫- 자기 의

 

신약 시대 때 예수님께 나아온 자들을 생각해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오로지 예수님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고, 마음에 하나님 외에 의지할 만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크고 작게 모두 하나님께 은혜와 응답을 받아봤습니다. 둘 다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신약 시대에 예수님을 만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반면에 우리는 하나님께 내세우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훈련을 오래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우리 자신이 한 행위에 가치를 두고 자랑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했으니까 응답이 왔다고 생각하거나, 기도했는데 왜 응답이 안 오지?’ 하는 가증한 마음을 하나님께 품으면서 기도를 하는 덫을 밟을 수 있습니다. 자기 의는 하나님의 의를 대적하는 죄이므로 성령께서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마음으로 겸손히 기도하십시오.

 

5. 예배에 참석하지 말고 예배의 도구가 돼라

 

육신을 따라 사는 자인지 성령을 따라 사는 자인지는 그의 생각을 보면 압니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이 기뻐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하지만, 진노의 자녀들은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기를 기뻐합니다. 죄를 좋아하는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죄의 덫을 놓고 기다리는 악한 영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일용할 양식이란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영혼을 살리는 양식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말고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는 귀신과 싸워 이길 능력을 구하는 것으로, 보혈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와 일맥상통합니다. 보혈의 능력이 가슴에 새겨지려면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내 마음이 온통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되어 미친 듯이 하나님을 부르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는 의식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제물은 산 것을 죽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매일의 삶이 영적 제사를 드리는 삶이 되려면, 자아는 죽고 성령이 통치하시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에 있더라고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고 내 안의 추악함을 보고, 온전히 죄악으로 가득한 나를 볼 때 온전히 죄사함을 받게 되며, 마굿간이 성전으로 변화되는 날이 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가서 일하다가 잠시 쉴 틈이 올 때 용수철처럼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진정한 예배의 도구가 되는 날까지 멈추지 마십시오.